Текст песни
첫 번째 기록. 2025년 7월 10일 오후 한 시, 대구에서. 제가 7년 전에 할머님들을 위해서 공연하고 진작 찾아뵀었어야 하는데 살기 힘들다고 제가 해야 할 일을 미루다가 최근에 이옥선 할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더 늦어지기 전에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참 너무 불편하지. 왜 노래를 부르시나? 네. 어떤 노래? 저는 랩이라는 노래를 부르는데요. 약간 시조를 빠르게 부르는 그런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뭔가 거기 이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넣고. 예를 들면 할머님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멋있는, 멋있는 노래합니다. 멋있는 노래. 숨어서 참 좋은 연을 많이 하셨네. 네. 근데 그런 걸 모르고 있었네. 음... 할머니들 생각하는 젊은 친구들이랑 계속 찾아뵀었어야 하는데 이렇게 늦게 찾아봬서 죄송합니다. 지금 몇, 몇이에요. 그래? 99년생 올해 스물일곱입니다. 아이고, 아주 젊어. 열아홉 되네. 여러분들 같은 분이 많이 있으면 벌써 해결됐을 겁니다. 그렇죠. 저 혼자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겠지만 선생님의 음성을 제 음반에 기록해서 오래 남겨보겠습니다. 그 할머님께서 올해로 아흔여섯 되셨고 92년도에 첫 증언을 하셨잖아요. 그 후로 외교위원회도 증인으로 참석하시고 아직도 인권운동에 앞장서시고 계신데 그 오랜 시간 동안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실 수 있는 힘이 어디서 오는지 듣고 싶습니다. 참 배우지 못하게 한이 되고 하지만은 좀 더 배워가지고 그랬으면 참 내가 많이 밝힐 건데. 제일 걱정되는 게. 이제 할머니들 다 돌아가시고. 내 위로 몇 분 남았는데도 다 누워있고 그래요. 그래도 제가... 가장 뭐 제일 늦게까지 이렇게 있는 건데. 제가 약속을 했으니까. 네. 배운 건 없지만은... 그래도 나는 이 위안부 문제를 끝을 내겠다 해서 그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네. 꼭 나는 해결하고 저 가가지고 할머니들한테 내가 할, 내가 할머니들 내가 해결하고 왔다 해야 돼요. 할머님의 오빠께서 할머니 어렸을 적에 조선을 찾으러 간다고 말씀하시고 독립운동에 참여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부분에 대한 할머님의 기억도 기록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우리 엄마, 아버지도 오빠가 공화르 갔어요. 공화르 갔는갑다 했는데. 오빠야 어디 가노 카면 조선 찾아가더래요. 그러면서도 간다고 오빠야 보자 조선 찾아가 보자 카면 "수야. 무거워서 못 들고 온다. 찾아야지." 하는 얘기를 하고는 저는 거기 갔었어요. 거기 갔어요. 그리고 거기 갔다가 오니까... 그 이후에 할머니께서 46년경에 돌아오셨고 그 후 오빠께서 보도연맹 관련 민간인 학살로 인해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아, 내가 갔을 적에 우물 가 있는데 여기 저 밭이었었어요. 이, 주변이. 목화밭이었었는데. 오빠가 저기서 나타나면서 "수야" 해서 "오빠" 하고 갈라카니 오빠가 이제 손을 이러면서도 없어져 버렸어요. 그래서 엄마한테 가가지고 "엄마, 어제 거기 오빠 봤는데 오빠는 내가 갈라카니 오빠가 오지 마라 카더라." 하니 그때서 형무소가 이 근처에 있었어요. 대구야. "형무소 한번 가봐라. 형무소에 가서 우리 오빠가 이름을 이종팔인데요. 거기 있어요." 좀 보러 왔어요 하니까 7월 31일 날. 뭘 떠붙여 가지고 끌고 가서 죽였다고 하더라고요. 죽는 것도 모르고 쫓아와 가지고 엄마한테 엄마 오빠. 죽였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죽였다고 하는 거 모르고 했는데 그때서야 엄마가 대선 동업을 하면서는. 엄마가 죽은 거나 했는데 그래도 몰랐어요. 거기 뭐 양념 살이라고 하고. 힘든 기억의 한 부분을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잘 기록해 놓겠습니다. 그리고 저를 포함한 할머님들의 다음 세대, 또 다음 세대가 할머님들을 위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도 배우고 싶습니다. 어쨌든 간에 나는 다 살았지만 해결을 완벽하게 해가지고. 일본과 남이 아니에요. 제일 먼저 나라 하고 싶은 거는. 이 위안부 문제는 해결해야 된다. 이 젊은 분들이 일본과. 교류를 해가지고 서로 왕래하면서 위안부라 하는 게 뭐 있냐. 위안부를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유네스코에 등재는 반드시 해야. 하는 거 하도록 하세요.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할 일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 생각엔 이제 이 세대 세계는 하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역사에 반복되어선 안 되는 일들은 저희가 나서서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할머님들 기록물이 유네스코에 등재되는 큰일은 이제 저 혼자의 힘으로 해낼 수 없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친구들과 모두 함께라면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책도 복사하고. 사인하고. 저도 사인해야 되겠어요. 이제 마지막으로 할머님께서 지금 한국의 젊은 세대, 그리고 그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말씀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난 여러분들을 위해서 참 어떻게 말하면 좋겠나 생각을 해봐줘. 여러분들이 씩씩하게 잘 살아야 돼요. 기죽지 말아요. 제가 제일 괴로운 거는. 젊은 사람들, 또 지금 태어나는 사람들. 이 세상이 너무 각박해졌고. 너무. 자신을 잃지 말고 당당하게 사세요. 당당하게. 기죽지 말아요. 기죽으면 아무것도 없어요. 다 당당하게 배가지고 살아야지. 제가 할머님께 인사드리고 힘이 되어 드리고 싶어서 찾아뵌 건데. 시작부터 할머니 앞에서 울기만 하고. 오늘 큰 가르침 정말 감사드립니다. 진짜 부탁이 있는데. 네, 무슨 부탁이신가요? 제가 죽으면 세 가지 노래를 가져가야 돼요. 네, 그 세 가지 곡들 말씀해 주시면 제가 가져가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세 곡들 다음 세대에도 제가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귀국선. 골찌개 귀국선 노래가 막 돌아오네. 돌아오네. 오복 삼촌 찾아서 얼마나 그립던가. 무궁화꽃을 얼마나 외쳤던가. 태극기빠를 갈매기가 웃어라. 파도가 춤춰야 할까? 아, 내 머리에는 희망도 그날. 네, 방금 불러주신 귀국선, 바위처럼. 그리고 할머니를 구해주신 군인께 전해 받으신 노래. 그 세 곡들 모두 제가 기억하고 이어 부르겠습니다. 열심히 노래하시고 제가 노래 세 가지 가져갈 노래. 이것만 잊지 마시고 해주시고 나중에 이 노래를 꼭 이어야 된다 하는 걸 얘기를 해주시고. 네, 그 세 곡들 전부 제가 이야기를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할머님 뵙기 전에 제가 할머님 드리려고 편지를 써봤는데요. 어떻게 썼는 편지인가?
Raphael — LEE YONG SOO INTERLUDE
«LEE YONG SOO INTERLUDE» — Raphael. Читайте текст песни и подпевайте с караоке-подсветкой: строки текста подсвечиваются в такт музыке. Слушайте онлайн бесплатно или скачайте mp3. Длительность записи — 12:17. Жанр — Рэп и хип-хоп.
